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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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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성(우라누스) 작전 === [include(틀:2차 세계대전의 전투 목록(유럽 및 아프리카))]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536349,#333333><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attachment/Operation_URANUS.jpg|width=100%]] || ||<rowbgcolor=#536349,#222222><rowcolor=white> 천왕성 작전의 전개도 || Сталинградская стратегическая наступательная 1942년 가을의 어느날, [[게오르기 주코프]]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는 [[크렘린]]에서 열린 [[스타프카]] 회의에서 축차적인 병력 투입만으로는 독일군을 격퇴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뿐이고 오히려 시간 버는 효과만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스탈린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럼 무슨 다른 좋은 수가 있단 말인가?"라고 되물었고, 두 장군들은 며칠 안에 다른 방안을 찾아오겠다고 스탈린에게 대답했다. 며칠 후 소련군 [[총참모부]]에서 여러 참모들이 세부 논의 끝에 확정한 작전안은 그동안의 소극적인 수비를 떠나 대규모의 공세를 통해 스탈린그라드에 있는 독일 국방군 B집단군에게 타격을 가하고 남부 러시아 전선의 전세를 뒤집는다는 계획이었다.[*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니콜라이 바투틴]] 중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바실렙스키는 독일 6군의 좌익과 우익이 독일군에 비해 제대로 훈련되지 못하고 변변찮은 장비에 무기도 부족한데다 사기도 엉망인 헝가리군과 루마니아군에 의해 방어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주코프와 작전을 의논했다. 주코프와 바실렙스키는 스탈린의 승인을 얻어 스탈린그라드 시내에 겨우 거점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병력을 지원하여 독일 국방군 제6군을 붙잡아두고 양 측면으로 [[콘스탄틴 로코솝스키]]의 돈 전선군과 [[니콜라이 바투틴]]의 남서 전선군의 협격을 통하여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을 포위'''하는 골자의 ''''천왕성 작전'''[* Operation Uranus, 러시아어 Опера́ция «Ура́н»]을 입안했다.[* 동부전선의 분수령으로 꼽히는 천왕성 작전이 있는 것과 동시에 공교롭게도 서부전선의 분수령으로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정식 작전명 또한 다름아닌 해왕성 작전(Operation Neptune)이다.] 이에 따라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던 볼가강 교두보에는 최소한의 방어만 가능한 수준의 병력만을 보충하고 스탈린그라드 북서쪽과 서남쪽에 대규모의 병력을 집결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모든 명령은 구두로 전달되었으며, 무선이나 문서를 사용한 명령은 금지되었다. 기밀 유지를 위해서 작전 개시 직전까지 당시 스탈린그라드의 예료멘코와 추이코프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무조건 사수하라는 명령만 내렸다. 당시 시점에서는 소련군 또한 스탈린그라드에 추가적인 병력 및 물자 보충을 하기 곤란해진 상황이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볼가강에 얼음이 얼기 시작한 것이다. 강이 완전히 얼어서 얼음이 단단해지면 간편하게 육상 보급로를 운용할 수 있지만, 그 전에는 얼음이 떠다나면서 오히려 선박을 이용한 수송을 방해한다. 즉 당시 볼가강 교두보의 소련군은 얼음이 완전히 얼고 천왕성 작전이 진행될 때까지 부족한 병력과 물자로 버티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당시 보급난이 심해졌을 땐 장병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주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렌드리스로 들여온 미국산 [[허쉬(기업)|허쉬]] [[초콜릿]]은 넉넉해서 장병들에게 지급이 가능했고 이 외에 미국으로부터 지원 온 [[스팸]]이 소련군에게 보급되기도 했다. 당시 이 전투의 정치장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당시 소련군들이 스팸에 대해서 온갖 저속한 농담을 만들면서 낄낄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팸은 대단히 맛있었으며 농담과 별개로 다들 잘 먹었다고 회고했는데, 우크라이나와 캅카스의 농경지를 잃은 상황에서 스팸이 없었다면 굶어죽었을 것이라고 회상하였다.[* 무엇보다 스팸 자체가 "고기"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보니 전장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소련군의 사기도 올라갔다.] 이후 11월 10일, 소련군은 5개 야전군 규모의 대병력의 집결을 완료했다. 이렇게 집결한 병력은 '''90만'''[* 일부 자료에서는 115만이라고 한다.]에 가까운 대병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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